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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s Note/미완의 에세이 Essays

[에세이] 여행.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여행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두어 번 출판사에 의뢰를 하다 거절당한 후에, 천천히 완성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7년째 아주 느리게 써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아주 느린 행보조차도 얼마간 멈추었었고.


나는 작가가 아니었던 적이 없지만, 현재를 채운 내 삶의 형식은 표면적으로는 '회사원'으로 규정된다. 물론 이 형식 안에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련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사회는. 아니, 회사는 늘 깊이보다는 구색 좋은 어떤 것을 끝없이 뱉어 내기를 요구한다.


때로 몸서리쳐지는 순간들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이 모든 것들이 본연의 자유로 되돌아가기 위한 과정임을, 지나온 길을 찬찬히 돌아보며 되새길 뿐.


부제에 '그림 에세이'라고는 붙여놓았지만 이 글은 그림의 메시지를 차용하여 풀어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필자가 그림이라는 항구로 흘러들어오게 되었는가 하는, 그림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글이다. 그러니 '그림으로 가는', 혹은 '그림을 향한' 에세이가 더 맞는 표현일 수도 있다.


오래전,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잡아놓은 목차가 있다. 쓰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수정되고 있지만 큰 틀은 변함이 없다. 때마다 내 글을 읽어주는 지인들은 차라리 런던만을 소재로 따로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분량이 충분하지 않아서 (다른 말로, 그렇게까지 기억해내고 싶은 일들이 많지 않아서) 여전히 그 부분에 관하여는 고민스럽다.


각설하고, 프롤로그와 목차를 소개한다.


 

 


Prologue


‘겨울, 그림, 별, 바다, 비, 보랏빛 그리고 어린 왕자’는 내가  열여섯에 만들었던 온라인 커뮤니티의 이름이다. 내가 좋아하던 많은 것들—무한한 우주와 광활한 자연의 단면들—을 수집해 놓은 개인적 공간으로 출발한 이 커뮤니티는 어느 순간 같은 취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가슴속에 묻어 놓았던 작은 별과 소소한 일상들을 꺼내어 보이는 곳이 되어 있었다. 2001년 어느 날엔가 추천 커뮤니티 목록에 오르는 바람에 갑자기 수백 명이 밀려들어와 화들짝 놀라기도 했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포털 사이트의 유료화 선언으로 가입자 대부분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지만.

 

내가 만든 공간 속에서, 지친 누군가가 편안함을 느끼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 알 수 없는 포근한 감정을 여전히 기억한다. 만져지지 않지만 쉴 수 있는 공간. 실재하지만 그 표면은 만질 수 없는 그 무엇. 그때 온라인으로 나타났던 그 공간은, 이제와 생각하건대 이미 그 이전부터도 나의 안에 얼기설기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하고 속삭여 주었던 어린 왕자는 나로 하여금 내면적 세계를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어릴 적 동생과 함께 목격했던 영적 존재와 아마도 꿈이었을 짧은 타임워프의 기억, 그리고 몇 년 주기로 반복되는 특정한 배경의 꿈과 그로부터 파생된 자잘하지만 명확한 데자뷔 현상 등은 ‘보이는 것’과 숙명적으로 맞닿아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하는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것이 나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는 보이는 공간과 보이지 않는 공간을 동시에 걷고, 느끼고, 여행한다. 그리하여 그 둘의 조합을 기록하고 그리며 때때로 노래하는 것이다. 사실 누구나 그렇게 하고 있지만, 같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에 대한 각 사람의 인식 과정과 표현 방법이 다르기에 그 결과물은 70억 가지 색의 스펙트럼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대책 없던 미대생에서 작가로 불리기까지, 근 5년간의 여정을 집약시킨 나의 여행지도이다. 물론 이는 ‘나’라는 개인의 인생을 매개로 빚어낸 것이기에 객관적인 여행정보가 될 수는 없다. 나는 다만 그때의 시간과 공간, 그때의 공기, 그때 가졌던 나의 생각들이 뒤섞인 안료 웅덩이에 적신 천 조각들을 지나는 곳마다 묶어 두었을 뿐이다. 채 마르지 않은 색색의 물방울들이 아직도 천 끝에서 똑똑 떨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말라 증발되어 버리기 전에, 나는 그 표식을 따라 나의 길을 되짚어 보이려 한다. 이 책을 펼친 당신의 오늘이 당신만의 색으로 점철된 휴식의 꼭지가 되었으면 한다. 거기서부터, 당신의 여행 또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막무가내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마른땅처럼 쩍쩍 갈라진 마음에 물기 머금은 숨을 불어넣는 것이 먼저다. 좁디좁은 마음 바닥에 꽁꽁 숨은 영혼의 활동 반경을 넓혀주기만 하면 몸은 어떻게든 따라가게 되어있으니까.

 

 

서울 #1. 항로선회


휴학그것으로 안녕

 


첫 출항  호주의 워홀러


나의 도시멜번


버스커로 살기

나의 첫 소장자

한 소녀의 전재산

네 집으로나 가버려동양인!

- 127불이 없었다


도심 속 공생

- 갈매기 형님들

포썸?

말은 거리노동자

무차별 파리폭격

새 말고 박쥐


어 돌러 머쉬룸!


 갤러리 계약


5월의 가을이란


반짝이던 너의 마지막


캔버라로의 초대


호주의 서울대 ANU



서울 #2. 상사병과 기적


교환학생 선발


졸업전시


한 달을 울었다

 


그렇게 돌아왔다 - 캔버라의 교환학생


호주국립대학 ANU의 학생들


캔버라 - 새와 밤


Printmaking & Drawing Workshop


두 번째 눈 없는 겨울


브리즈번에서 비워내기

 


서울 #3. 순도 100의 무모함


유학 무한정 연기


아침커피를 뽑던 날들


포기와 무모함의 접점에서


희생이 따른다


공항으로

 


인연인지 악연인지 - 런던의 유학생


런던에 속았다


잿빛 겨울 위 무지개사탕


발목 잡는 오렌지


공간의 부재는 곧 절망


공포의 베드버그


겨울 너머의 봄

-새 집과 프랑크푸르트

-노르웨이에서의 3

-런던에도 봄은 오더라


어느 초라한 날에 만난 요한


응급실에 누워


로빈과 이안


그래도 정이 들었는지

 


런더너의 막간 이태리여행

 

로마 카타콤의 닻

색채의 곳간 피렌체

반짝이는 베니스의 청록

우리의 젊음에 대하여

 


서울 #4. 잠시정박


독일로 갈 준비


뜻밖의 소식

 


은빛 거울 발트해 - 독일 북부의 초대 아티스트


런던에 마침표 찍기


 동독의 잿빛 휴양도시 퀼룽스본


설치작가 마찌아와의 동거


외눈고양이와 괴짜 요리사


런던으로부터 날아온 기쁨


발트해의 파도와 태풍


조율의 진통


음악가 루시네에게서 배운 어떤 것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혹한의 겨울 - 독일 남부의 나그네


공기 속에 녹아 든 루터의 숨결


아욱스부르크의 꽃집


프라이빗 뷰


8일간의 런던 재회

요한의 독감

템즈 강변 옥소타워

배송사고

- Singin in the rain


끝을 감지하다

 


서울 #5. 본향으로


작가로서의 귀환

 


나와 너의 20대 

  




p76-77


잿빛 겨울 위 무지개 사탕

 

얄궂은 이곳 한기는  가슴속 온도계를 단번에 부러뜨리고도 시치미를 떼기 일쑤다. 영상 7도 따위에 뼈가 시린 느낌을 받는다는 건 꽤나 굴욕적이지만 그도 그럴 것이, 단열이 잘 되지 않는 구조의 건물들 천지라 어느 한 곳도 마음 편히 추위를 털어낼 자리가 없는 것이다.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환영하던 나인데, 오후 4시부터 아득하게 깜깜 해지는 이 스산한 겨울은 심히 당황스럽다.  


이 영리한 도시는 무섭도록 어둠이 스미는 이 긴긴 겨울 터널을 무엇으로 심심치 않게  넘길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크리스마스가 늦가을부터 시작된 것이다. 진청으로 암전 되어가는 하늘 위로 금테를 두른 오색 행성들이 떠올랐고, 푸른 눈송이들은 그물이 되어 칠흑을 꽁꽁 싸맸다. 번쩍이는 선물들과 눈 결정이 내려앉은 우산이 거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띄워졌으며, 눈에 별을 박은 사람들은 쇼핑백이 주렁주렁한 팔을 들쳐 올리며 바쁘게 셔터를 눌러 댔다.


한껏 들뜬 분위기 속, 고즈넉한 카페의 뿌연 창 너머로 스르르 번지는 불빛들의 움직임을 좇다 보면  마음속 체기가 잠시 내려간다. 환희의 공간을 벗어나 집에 가까워 올수록 거리의 장식들은  형편없지만, 그저 그렇게 있음으로도 가셔 가는 온기를 잊지 않을 수 있다. 누구도 그 이상을 기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귀갓길. 생과 사를 힘겹게 구분 짓던 낡은 개신교 교회의 얕은 담장이 눈보라에 쓰러질 듯 위태하다. 담장 너머 촘촘히 선 묘비들이 나의  옆얼굴을 주시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대로 경계가 사라지고, 나의 살아있음 또한 무효화되지는 않을까. 걸음을 재촉하지만 오르막이 버겁다. 그러다 불현듯, 낮에 마주쳤던 길가의 장미꽃이 떠올랐다.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축 늘어진, 그러나, 그럼에도, 생기를 놓지 않은 그 살굿빛 얼굴을.


참으로 묘한 도시다. 런던은.


죽게 하는 것과 살게 하는 것이 극명하나, 모두가 뒤섞여 흩뿌려져 있다. 재 속에 굴려 놓은 사탕 같다. 누구든 머뭇거리나, 곧 별 수 없이 집어 먹게 된다. 그것이 양약은 못되나, 그 안에는 그런대로 살아지도록 하는 어떤 달콤함이 있다. 딱히 힘이 된 것은 아니나, 그만큼 살아진 것도 내 덕이라며 생색은 낼만큼  내준다.


그런 것도 매력이라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용의는 있다.


그래, 차가운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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