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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s Note/미완의 에세이 Essays

휴학, 그것으로 안녕


서울 #1. 항로선회 

휴학그것으로 안녕 

 

2006년 겨울, 3학년을 마치고 공황상태가 찾아왔다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 믿고 해오던 많은 것들이 실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눈치채버렸기 때문에근본적인 문제는 3년을 보내놓고도 내가 시각디자인이라는 광범위한 울타리 안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었다전공영역 중에서는 영상 파트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었지만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까지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한계선이었다글은 늘 쓰던 것이고 할 말도 많지만 그것들을 표현할 방법즉 매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도 애매했고 그렇다고 그대로 계속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뾰족한 답도 대안도 나오지 않던 상황 속에서 나는 내가 속한 모든 환경적사회적 범주로부터 나를 격리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다나 자신을 시험하며 관찰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외부적 동기부여가 철저히 배제된 상황에 놓인다면나는 과연 나를 독립체로 존재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

휴학 후 수입가공식품판매건축설계사 사무보조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어디로든 떠나보자고 선택한 것이 호주 워킹홀리데이였다어학원을 다닐 심적물질적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영어쯤이야 얼마든지 닥치는 대로 익힐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어학연수는 애초부터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었다일단 시급한 것은 내가 평생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찾아내는 것이었다고민 끝에 캠코더와 노트북각종 그림도구를 챙기며내가 끝까지 어떤 작업에 매달리게 될 것인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결과적으로 그것은 이후 내 전공에 안녕을 고하게 된 발단이 되었다아마도 안녕이라기 보다는항로를 변경했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도달하고자 했던 목적지가 바뀐 것은 아니므로.  

그렇게 2007 10나는 먼 바다로 뱃머리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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