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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생활

브리즈번에서 비워내기 그렇게 돌아왔다-캔버라의 교환학생으로 #5브리즈번에서 비워내기 ‘역시 잘못 온 것일까?’ 브리즈번 시내의 번화가를 걸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적지 않은 수의 한국인들이 지나가며 흘리는 수많은 대화들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모국어는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빛의 속도로 빨려 들어와 뇌를 때리고 있었다. 듣고 싶지 않은데도 너무나 소상히 들려오는 그 왁자지껄한 소리들. 긴 시간을 타 언어권 사람들과 보내고 나면 신경 써서 듣는 것이 습관이 되어 귀가 평소보다 열려 있게 된다. 그러한 상태에서 갑자기 다시 모국어를 듣자면 쓸데 없는 나방 같은 정보들까지 다 채집되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또 한 달 정도는 이런 현상에 시달릴 것인데……. 어쨌든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왔으니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아.. 더보기
Printmaking & Drawing Workshop 그렇게 돌아왔다-캔버라의 교환학생으로 #3브리즈번에서 비워내기Printmaking & Drawing Workshop 이 곳에서의 한 학기는, 대외적 명분상으로는 내가 이전에 배워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시간이었지만 아니, 그것보다는 내 자아를 고요 속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사라졌다 돌아와 ‘간밤에 내 닭이 무슨 알을 낳았나’ 하고 지푸라기를 헤집어보는 어린 주인이 되는 어떤 놀이의 반복이었다. 전공이 달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한국에서의 빡빡한 학교생활에 비하면 수업도 과제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심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 나를 쫓던 대부분의 요소들이 순간 사라진 것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은,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큰 검은 작업용 책상과 큰 종이를 넣기에 넉넉.. 더보기
캔버라. 새와 밤 그렇게 돌아왔다-캔버라의 교환학생으로 #2캔버라, 새와 밤 1 아무것도 없다. 해야 할 일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작업과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도시. 아무 향도, 어떤 맛도 첨가되어있지 않은 정제된 수돗물과 같은 도시 캔버라. 걸어도 걸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풍경 속, 아주 멋없고, 우울하도록 솔직한 인공 호수가 있다. 여기서 만난 것은 사람도 건물도 아닌, 새들이다. 나는 이 호숫가에 앉아 정체 모를 검은 새의 일광욕을 넌지시 바라보다, 청둥오리들의 행렬에 길을 비켜주고, 동그란 열매를 부리로 아그작거리는 분홍가슴 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애써 플라타너스에서 시선을 돌린다. 짙으면서도 붉은 호주의 녹음이 황금으로 다시 피어나기까지, 노란 왕관을 쓴 새하얀 앵무새 코카.. 더보기
어 돌러 머쉬룸!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4어 돌러 머쉬룸! 내가 외국인 노동자 겸 자취생으로 살면서 생활비를 크게 아낄 수 있었던 건 재래 시장을 애용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었던 퀸 빅토리아 마켓은 나 같은 참새로서는 지나치기 힘든 방앗간이었다. 이곳엔 야채와 과일을 비롯한 농산물 이외에도 싱싱한 꽃과 각종 관광 기념품, 오팔 장신구, 옷, 정품 어그부츠까지 없는 것이 없는데 그 값은 대형마트나 상점보다 훨씬 저렴하다. 운이 좋으면 파격적인 흥정도 가능하며, 휴일인 월요일과 수요일의 전날, 그러니까 일요일, 화요일 마감시간을 공략하면 푼돈으로 질 좋은 식재료를 대량으로 구비할 수 있다. 실외에 위치한 농산품 코너는 그 구조상 변변한 식품보관시설이 없어 상인들 모두 경쟁적으로 판매에 임한다.. 더보기
나의 도시 멜번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1나의 도시, 멜번 서울 태생인 내가 난생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가 된 곳, 멜번. 원체 서울이 고향답지 못한 대도시이다 보니 이 장난감 같은 도시는 금세 내게 제2의 고향이 되어주었다. 준비단계에서 다른 많은 도시들을 제쳐두고 멜번을 선택했던 이유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 기록되었던 그 알량한 정보뭉치들은 이 땅을 밟음과 동시에 인식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강렬한 햇빛으로 선명하게 살아난 색들이 하늘과 건물들, 거리와 사람들을 휘감으며 일렁였다. 호주에 가니 입을 옷이 그렇게도 없더란 푸념 일색이던 사람들에게 돌연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을 만큼, 내 취향에는 꼭 맞는 오색찬란한 옷들 천지였다. 대체 무슨 연고로 추가요금까지 내고 꾸역꾸역 옷가지들을 쑤셔왔던가! 빌딩..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