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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s Note/미완의 에세이 Essays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8. 캔버라로의 초대


캔버라로의 초대

 

멜번이 고향인 영국계 호주인 친구의 제안으로 한국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 3주를 그녀의 학교가 있는 캔버라에서 보내기로 했다캔버라는 멜번과 시드니 사이에 위치한 호주의 행정수도이다순조로울 것으로 예상했던 이 단거리 여행은 시작부터 결코 만만치 않았다저가 항공계의 짐승타이거 에어웨이즈 항공편을 예약한 것이 화근이었다저가 항공사답게 체크인 장소가 공항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해있었던 것이다몇 번이고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지는 이민 가방을 일으키며 정비소로나 쓰일 법한 후미진 장소에 도착했다이미 녹초가 된 상태라 직원에게 말을 건넬 힘도 없었는데앞에 선 중동계 남자가 갑자기 직원과 싸우기 시작했다듣자 하니 출발 45분전까지 와야지만 탑승이 가능하니 돌아가라는 것이었다티켓 교환도 불가능했다국제선도 아닌 국내선그것도 코앞에 멈춰 서있는 비행기를 40분 전에 와도 탈 수 없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중동의 모래바람도 뚫고 레이저 빔을 쏘아대는 직원의 눈을 보니 당최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결국 이민가방을 굴리며 공항 메인 로비로 돌아가 타 항공사의 티켓을 끊었다붉고 푸른 유니폼의 여직원들이 어찌나 친절하던지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캔버라 공항은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아니명색이 수도인데해도 해도 너무 소박하잖아.


픽업을 나온 친구의 차 안에서한숨처럼 새어 나오는 이 한 마디를 막아낼 길이 없었다캔버라 시내에 있는 거라곤 듬성듬성 세워진 볼품없는 아파트형 건물들과 몇 개의 쇼핑센터정부 청사대학교그리고 인공호수뿐이었다이곳이 바로 학생과 공무원의 유토피아인가이곳의 명문대 학생은 공무원이 되고공무원은 공무원과 결혼해 학생을 낳고그 학생은 다시 공무원이 되는 시스템인 것일까?  머릿속이 공연히 혼란스러워질 때쯤 차가 멈췄다학교에서 5분거리에 있는 그럴싸한 아파트였다멀찍이 들려오는 친구의쾌적하고 넓은 집인데 아직 둘이서 쉐어를 하고 있네학기가 시작되면 한 명을 더 들일 생각이네 등의말을 팝송 가사처럼 반쯤 흘리며 짐을 풀려는 찰나한 소절의 클라이막스가 귀를 때렸다.

“내일은 다같이 근처 산으로 드라이브를 갈 거야새벽에 가면 캥거루가 많거든.

현지인 친구들이 말하는 캥거루는 대개 특대 사이즈의 그것을 지칭한다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크기의 캥거루는 사실 캥거루보다 작은 왈라비의 일종이 대부분이다그 말인즉슨내가 떠나기 전에 제대로 된 놈을 한번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새벽온몸을 외투와 목도리로 칭칭 감고서 길을 나섰다캥거루를 만날 확률은 반반이지만 그곳에서 보이는 정부 청사의 모습이 꽤 아름다우니 실망하지는 않을 거라는 친구들의 설명을 들으며 졸린 눈을 비볐다푸른 안갯속을 오르던 차 앞에이윽고 묵직한 물체가 나타났다.경계 태세로 몸을 곧게 세운 것이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귀엽다기보다는 굉장히 위협적이었다심기를 건드리면 차를 찌그러뜨릴 수 있다며 모두 숨을 죽였다무겁지 않은 얼마의 정적우리가 영 시시했는지 캥거루는 곧 가드를 내리고 수풀 너머로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캔버라에서 맞는 첫 일출은 따사로웠고 새로이 알게 된 친구들도 역시 그러했다친구 중 한 명은 과학수사를 하신다는 삼촌의 농장을 구경시켜주기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개강 시즌이 다가왔고 나는 자연스레 친구들의 학교를 홀로 탐방하게 되었다.

 

호주국립대학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호주 전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바로 그 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