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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s Note/미완의 에세이 Essays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9. 호주의 서울대 ANU

 

호주의 서울대 ANU

 








내가 서울대 교정을 제대로 거닐어 본 건 천문학과 주최의 청소년 천문관측 강좌에 오갔던 그때뿐이었지만 그 어렴풋한 인상은 ANU에 대해 차츰차츰 알아갈수록 오버랩 되어 되살아났다자국 최고의 법대의대공대인문대상경대가 있으면서음대와 미대를 포함한 예술대학도 그 대외적인 예우에 있어 빠짐이 없다는 닮은 점이 있기도 했고 교정의 느낌도 비슷했다예쁘다거나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건물들의 간격이 매우 넓고 산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녹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다예술대학은 음대와 미대가 나뉘어져 있는데, Canberra School of Art 라는 단과대명이 박힌 새하얀 건물이 바로 미술대학이다정원은 각 과의 한 학번당 12명 정도로나의 모교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던 고요함이 흘렀다개인에 할당된 작업공간은거짓말 시럽을 조금 첨가하자면 거의 운동장 수준이었다.


‘아이런 데서 조용하게 작업만 할 수 있으면 원이 없겠다.

 

생각이 난 즉시 교무과에서 회화과 교수의 연락처를 물어 면담을 신청했다면담일나는 이런저런 질문을 생각하며 길고 긴 복도 끝 하얀 미닫이 문을 열었다길고 푸석푸석한 회갈색 곱슬 머리에 답답하게 생긴 안경누가 봐도 저 사람은 교수다과히 웃지도 않고말투는 건조하다나는 회화전공 석사과정에 대해 상담을 하러 왔노라며이런저런 이야기와 그림 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그 사람이 내 말을 정말 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돌아올 대답은 확실해 보였다교수는 상당히 회의적이었고 곧 더 할말이 없다는 듯 학부 3학년 졸업대상자들의 작업실로 나를 데려갔다. (3년제가 보통의 학사코스이다이 정도는 그려야 우리 학교에 들어올 수 있다는 식이었다문제는 그 작품들이 한국인인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리 멋지지 않았다는 것이다모두 속칭 ‘노가다’성이 진한반복적 세부 묘사에 치중한 작품들이었다즉 그 사람은 내 지향점과 정 반대의 취향을 가진 교수였던 것이다입시체제가 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대상을 정밀 분석하여 밀도 있는 묘사를 하는 것은 그다지 크게 자랑할 일이 못 된다몇 시간 만에 쓱쓱 해치운 그런 그림 수 백장이 쌓여어느 한 날 미대를 들어가니까나는 그 잔재에서 가능한 한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고 싶었다.  

 

시간이 슬슬 아까워져 나는 대강 감탄한 척을 해주고 빠져 나왔다그 교수는 아마도수준미달의 학생을 충격요법으로 잘 타일러 내보냈다는 승리감을 느꼈을 것이다후에 이 학교를 다시 밟은 2009년 어느 날나를 줄곧 도와주던 판화과 클래스메이트는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그 교수 밑으로 배정 안된 건 천만 다행이야완전 꽉 막힌 사람이니까.

 

 


  

 

춥고 떨리는 8월의 끝자락그렇게 학교탐방을 마치며 손톱 만한 봄을 만났다.


‘내가 많이 기다렸는데미안하다 봄아난 이제 가장 더운 여름으로 돌아가야 하고또 가을을 만나야 하고복학도 해야 해.

 그래도 얼굴 보여줘서 고마워.

 

그래정리할 것이 너무 많다.

찾을 것은 찾았으니이제 돌아가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