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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

어 돌러 머쉬룸!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4어 돌러 머쉬룸! 내가 외국인 노동자 겸 자취생으로 살면서 생활비를 크게 아낄 수 있었던 건 재래 시장을 애용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었던 퀸 빅토리아 마켓은 나 같은 참새로서는 지나치기 힘든 방앗간이었다. 이곳엔 야채와 과일을 비롯한 농산물 이외에도 싱싱한 꽃과 각종 관광 기념품, 오팔 장신구, 옷, 정품 어그부츠까지 없는 것이 없는데 그 값은 대형마트나 상점보다 훨씬 저렴하다. 운이 좋으면 파격적인 흥정도 가능하며, 휴일인 월요일과 수요일의 전날, 그러니까 일요일, 화요일 마감시간을 공략하면 푼돈으로 질 좋은 식재료를 대량으로 구비할 수 있다. 실외에 위치한 농산품 코너는 그 구조상 변변한 식품보관시설이 없어 상인들 모두 경쟁적으로 판매에 임한다.. 더보기
도심 속 공생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3도심 속 공생 -갈매기 형님들 멜번 땅을 밟은 지 한 달이 채 못되었을 무렵, 처음으로 잉크를 꺼내 슥슥 그려낸 것은 이곳의 첫인상에 관한 나의 총평이었다. 바다를 옆에 끼고 살아본 적이 없는 내게 갈매기는 바다에서 날아온 쪽지와도 같은 반가운 존재였다. 말끔하게 빠진 순백의 몸체 위에 늦봄의 햇살이 반지르르 흘러내리는 그 모습을 도심 속에서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주립도서관 앞 푸른 잔디 위에는 물 반 고기 반이 아닌, 사람 반 갈매기 반의 풍경이 맑은 날이면 어김없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멀리 있어 반갑던 이 녀석들은 함께 살면 살수록 그 실체를 드러내었고,나중에는 아련하기는커녕 그저 비둘기보다 크고 먹성 좋은 비둘기 8촌쯤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길바닥에 누군가 감.. 더보기
버스커로 살기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2버스커로 살기 - 나의 첫 소장자 뙤약볕 아래, 여느 날처럼 자리를 펴놓고 잉크 드로잉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고개를 드니 엄청난 속도로 이쪽으로 걸어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묵직한 컴퓨터 부품 박스를 양손에 움켜쥐고 고개는 꼿꼿이 정면을 향한 것이 누가 보아도 바삐 지나갈 사람이었다. 스쳐 지나는 찰나, 남자는 갑자기 두 세 걸음을 되돌아 오더니만 맨 앞쪽에 놓인 작은 드로잉을 사고 싶다고 했다. 원칙적으로 버스커는 도네이션은 받을 수 있어도 가진 것을 판매하지는 못하게 되어있다. 매우 형식적인 원칙이라 경찰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긴 하지만, 별로 팔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무슨 말은 해야 했다. “나는 그림 값을 정해본 적이 없는데…….. 더보기
나의 도시 멜번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1나의 도시, 멜번 서울 태생인 내가 난생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가 된 곳, 멜번. 원체 서울이 고향답지 못한 대도시이다 보니 이 장난감 같은 도시는 금세 내게 제2의 고향이 되어주었다. 준비단계에서 다른 많은 도시들을 제쳐두고 멜번을 선택했던 이유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 기록되었던 그 알량한 정보뭉치들은 이 땅을 밟음과 동시에 인식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강렬한 햇빛으로 선명하게 살아난 색들이 하늘과 건물들, 거리와 사람들을 휘감으며 일렁였다. 호주에 가니 입을 옷이 그렇게도 없더란 푸념 일색이던 사람들에게 돌연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을 만큼, 내 취향에는 꼭 맞는 오색찬란한 옷들 천지였다. 대체 무슨 연고로 추가요금까지 내고 꾸역꾸역 옷가지들을 쑤셔왔던가! 빌딩.. 더보기
휴학, 그것으로 안녕 서울 #1. 항로선회 휴학, 그것으로 안녕 2006년 겨울, 3학년을 마치고 공황상태가 찾아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 믿고 해오던 많은 것들이 실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눈치채버렸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는 3년을 보내놓고도 내가 시각디자인이라는 광범위한 울타리 안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전공영역 중에서는 영상 파트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었지만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까지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한계선이었다. 글은 늘 쓰던 것이고 할 말도 많지만 그것들을 표현할 방법, 즉 매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도 애매했고 그렇다고 그대로 계속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뾰족한 답도 대안도 나오지 않던 상황 속에서 나는 내가 속한 모든 .. 더보기
미완의 에세이. 6/14 2013년 여름, 대학 동기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런던에 가고 싶다고. 그곳은 어땠느냐고. 퇴근길에 책상 한편에 두었던 에세이 초고를 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당시에 쓰고 있던 부분이라 런던 챕터만 따로 프린트해 둔 것이었다. '런던에 속았다'는 챕터 소제목 그대로, 나는 런던행을 그리 추천하는 입장은 아니다. 나와의 공통분모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 하루 저녁을 소모한 이런저런 경험담과, 머리 셋을 모아 이리저리 짜낸 현실적 대안들이 도움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녀는 결국 런던행을 택하지 않았고, 현재 국내에서 만족할 만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대학 동기라 해봤자 서로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관계가 되어버리기 십상이지만 이만큼 성숙해진 (혹은 능글맞아진) 모습들로 유쾌한 저녁을.. 더보기
[에세이] 여행.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여행.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두어 번 출판사에 의뢰를 하다 거절당한 후에, 천천히 완성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7년째 아주 느리게 써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아주 느린 행보조차도 얼마간 멈추었었고. 나는 작가가 아니었던 적이 없지만, 현재를 채운 내 삶의 형식은 표면적으로는 '회사원'으로 규정된다. 물론 이 형식 안에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련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사회는. 아니, 회사는 늘 깊이보다는 구색 좋은 어떤 것을 끝없이 뱉어 내기를 요구한다. 때로 몸서리쳐지는 순간들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이 모든 것들이 본연의 자유로 되돌아가기 위한 과정임을, 지나온 길을 찬찬히 돌아보며 되새길 뿐. 부제에 '그림 에세이'라고는 붙여놓았지만 이 글은 그림의 메시지를 차용하여 풀어가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