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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유학

런던에도 봄은 오더라 인연인지 악연인지-런던의 유학생으로 #8런던에도 봄은 오더라 오후의 나른함이 드리운 방 안의 공기가 거짓말 같다. 결국 오로라는 보지 못했다. 오로라 주의보에 의하면, 그날은 연중 손에 꼽을 정도로 오로라의 세기가 강한 날이었다. 핀란드 국경까지 달렸지만 두터운 눈구름은 손바닥만치도 걷히지 않았다. 그러나 어쩐지 아쉽지가 않은 것은, 우리가 제대로, 다시, 어느 좋은 날에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마주쳤다면, 내가 소원해온 시간들이 더욱 아쉬웠을 지 모를 일이다. 언제이고, 그 겨울로 나는 돌아갈 것이다. 삭막한 도시와 고요한 항구를 지나 2주 만에 돌아온 방에는 봄이 가득 들어차 있다. 정원의 풀꽃들이 문틈으로까지 얼굴을 내밀고, 창 밖엔 팝송에나 가끔 등장하던 블랙버드가 까르르 기웃.. 더보기
공간의 부재는 곧 절망 인연인지 악연인지-런던의 유학생으로 #5공간의 부재는 곧 절망 매일 매일 닥쳐오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쳐낸다. 그런데, 그 뒤에 남겨진 응어리들을 마저 비워내는 작업은 으레 내 공간 안에 홀로 남겨져 있을 때에 주로 하던 일이다. 아, 그러나 지금 그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을 소유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집세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을 셰어하는 형태로 집을 구했던 터라 모든 것에 룸메이트의 동의를 구해야 했다. 작업을 하는 동안 책상 위 스탠드를 켜놓는 것 조차도. 생활 패턴이 정 반대인 동유럽계 회계 전공 학생을 만난 것도 불운 아닌 불운이었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지만 잔병치레가 잦아 은근히 신경을 써야 했다. 완전히 무장해제될 수 있는 개인 공간이 없기에 별도의 작업 공간이 절실했지만, 학교에서.. 더보기
잿빛 겨울 위 무지개 사탕 인연인지 악연인지-런던의 유학생으로 #2잿빛 겨울 위 무지개 사탕 얄궂은 이곳 한기는 가슴 속 온도계를 단번에 부러뜨리고도 시치미를 떼기 일쑤다. 영상 7도 따위에 뼈가 시린 느낌을 받는다는 건 꽤나 굴욕적이지만 그도 그럴 것이, 단열이 잘 되지 않는 구조의 건물들 천지라 어느 한 곳도 마음 편히 추위를 털어낼 자리가 없는 것이다.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환영하던 나인데, 오후 4시부터 아득하게 깜깜해지는 이 스산한 겨울은 심히 당황스럽다. 이 영리한 도시는 무섭도록 어둠이 스미는 이 긴긴 겨울 터널을 무엇으로 심심치 않게 넘길 지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크리스마스가 늦가을부터 시작된 것이다. 진청으로 암전되어가는 하늘 위로 금테를 두른 오색 행성들이 떠올랐고, 푸른 눈송이들은 그물이 되어 칠흑을 꽁꽁.. 더보기
'09-'10 서울. 순도 100의 무모함 서울 #5. 순도 100의 무모함 유학 무한정 연기 실은, 돌아오자 마자 바로 9월 학기로 떠날 수 있었다면,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교환학생 선발이 결정되기도 전에 먼저 확정된 것이 영국 킹스턴 대학 석사과정 입학 허가였다. 설명이나 듣자며 참석했던 대학 설명회에서 관계자와 인터뷰를 가지던 중 무조건부 합격을 받았던 것이다. 멜번에서 어떻게 버스킹을 시작했었는지, 그림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는지 등의 이야기들을 신이 나서 떠들어댔던 것 같다. 조건부 합격을 받아둔 다음 영어 시험을 치르는 사람도 많은데, 내 경우엔 교환학생 때문에 미리 받은 IELTS 성적이 있어 바로 결정이 되었다. 설명회에 참석한 이유는 사실 별 볼 일 없다. 같은 수업을 들었던 영국인 교환학생이 만날 때 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