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oy's Note/미완의 에세이 Essays

그렇게 돌아왔다-캔버라의 교환학생으로 #1. ANU, 너희들


그렇게 돌아왔다

캔버라의 교환학생으로

 




ANU너희들

 

겨우내 꽁꽁 언 몸이 풀려갈 때쯤 찾아온 공간 이동의 시간.

나는 불현듯 늦여름 위에 서있다봄 내음도 맡지 못한 채 다시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하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오고 싶었고오게 되었으니.

 

드디어 찾아온 개강

아직 열기를 머금은 햇볕 아래학생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더할 수 없는 활기로 교정은 들썩였다

반갑다고오랜만이라고.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지만 나도 교정 곳곳에 동일한 인사를 건네며 반가움을 표했다숲도이름 모를 새들 조차도 반갑고 또 반가웠기로이제는 방문객이 아닌학생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이제는 어깨너머로 마냥 기웃거리지 않아도 된다도서관에 당당하게 들어가도다리가 풀리도록 캠퍼스를 걸어도카페 한 구석을 독차지하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멜번에서부터 알던 친구 V와 그녀의 하우스메이트 C의 집에 들어간 덕에나는 빠르게 캔버라 생활에 적응해나갔다V는 법학과 경영학 복수 전공C는 법학과 아시아문화학 복수 전공이었다.복수전공 선택의 기회는 입학 성적에 따라 좌우되는데그 중 V가 속한 법학 및 경영 복수 전공은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만 주어지는 선택 사항이다똑똑한 친구라는 것은 이전부터도 알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만나니 더욱 그녀의 진가가 느껴지는 듯 했다그녀는 전액 장학금뿐만 아니라 방학 시즌마다 고향까지 왕복할 수 있는 비행기 티켓까지 학교에서 지원 받고 있었다

 

함께 지낼수록 놀라웠던 것은이 두 친구 모두 예술적 감각이 탁월했다는 점이다다른 말로학업 성적을 최상위권으로 유지하면서도 예술성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부모와 학교로부터 융통성 있는 지도를 받았다는 것이다수준급의 하프 연주 실력으로 시시때때로 한 곡조씩 뽑아내는 것이 V의 취미였다그녀는 시험기간에도 마이클 부블레의 노래를 흥얼거리며얼핏 보면 노는 것처럼 공부를 했다. C는 V보다는 학업과 생활에 있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친구였지만그런 면을 역으로 잘 계발한 덕에 일어를 포함한 4개국어에 능통했다춤에도 소질이 있어 어릴 적 익힌 무용을 종종 즐겼으며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때때로 친구들을 모아놓고 창작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정한 길에 접어든 후에 뒤늦게 예술 분야를 배우려 어려운 용기와 무리한 돈과 긴 시간을 들여야만 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상이한 그 모습에나는 적잖은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다왜 대다수의 한국 학부모들은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어느 연령대부터는 모든 것을 끊고 국영수에만 집중하도록 지도하는 걸까이곳에도 분명 대입과 졸업을 위한 석차가 존재하며 그 치열한 경쟁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2009년 세계 대학순위 17위의 학교인데 아무렴그런데 앞뒤 양 옆을 살펴보아도이건 달라도 너무 다르다나는 교육학자도전문가도 아니지만 그것은 분명 뿌리 깊은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몇 가지 사례만 가지고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나의 경험으로 볼 때예술적 감성과 함께 성장하는 것은 학업에 도움을 주면 주었지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오히려 그렇게 발달된 감성이 의식이라는 부표로부터 한 줄 한 줄 뻗어 내려가깊은 바다 속을 유영중인‘의지를 수면 위로 건져내는 그물망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개인의 성향과 자질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적어도 나는 그런 과정을 거쳐왔기에 오늘 또 하루 나를 존재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문득감사하다.


 

내게 주어졌던 많은 것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을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중요한 순간마다 극적으로 엮어져 온 나의 길에 대하여.

 

 


'Joy's Note > 미완의 에세이 Essays' 카테고리의 다른 글

Printmaking & Drawing Workshop  (0) 2013.08.26
캔버라. 새와 밤  (0) 2013.08.26
서울 #4. 한 달을 울었다  (0) 2013.08.26
서울 #3. 졸업전시  (0) 2013.08.26
서울 #2. 상사병과 기적  (0) 2013.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