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oy's Note/미완의 에세이 Essays

새 집과 프랑크푸르트

인연인지 악연인지-런던의 유학생으로 #6

새 집과 프랑크푸르트

 

피신해 있는 동안 다행히도 근처에 빈방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인도계 영국인 가족이 살던 집인데 이사를 가면서 세를 놓는 중이라고. 집세가 조금 높긴 했지만 급하게 들어갈 방을 찾은 것도 감지덕지였다. 빈 방은 잡초가 무성한 정원이 보이는 다용도실이었고, 집주인이 직접 만든 바가 한쪽 벽에 비치되어 있었다. 파티용으로 쓰던 공간인데 집주인 아들이 꼭대기 층에 계속 살 예정이라 술병들은 그대로 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생활패턴이 비슷한 한국인 플랏메이트를 구해 함께 지내기로 했다. 건축학도인 H는 말이 잘 통하고 배려심이 깊었다. 네일 아트 기술로 런던 땅에서 남부럽지 않을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멋진 친구였다. 술병이 가득한 찬장은 이내 여자 둘의 화장대로 변신했고 텅 빈 방은 조립식 가구들로 채워졌다.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지 채 2주가 안되었을 무렵, 이전에 참여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던 프랑크푸르트 한인작가전을 위해 열흘 정도의 여행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학생비자를 가진 사람이 학기 중에 영국 밖으로 나갈 경우 출입국 심사가 엄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교수에게 확인증도 받아두었다. 그럼에도 결국 심사관 앞에서 십여 분의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이 여행이 어떻게 내 학업의 일환이 되는가를 증명해 보이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며칠 후 내가 심사관에게 한 모든 말은 그 타당성을 잃었다. 전시 구성도 좋지 않았던 데다 오프닝 때 비치해 두었던 포트폴리오와 명함들이 통째로 분실되어 개인적으로는 참담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런 전시를 하려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이곳까지 왔는가 하는 회의감이었다. 그 포트폴리오에는 아끼던 잉크드로잉 세 점이 들어있었다. 전시 기간 내내 괴테문화원에 들러 직접 찾아보기도 하고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버려진 흔적도 없고 본 사람도 없다니. 드로잉을 훔친 것도 괘씸하지만 명함을 두 통이나 가져간 것도 찜찜한 일이었다. 드나들던 어학수강생들이 그랬다면 적어도 가지고 싶어서였을 테니 이해할 수 있지만, 혹여 참여했던 작가들이나 협회 관계자들 중 하나의 소행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그런 경우, 무참히 버려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의심은 접어두기로 하고 시내를 바쁘게 쏘다녔지만 도시 전체에 걸쳐있는 듯한 뭔지 모를 음산한 기운과 그로테스크한 테마의 대형미술관 전시 때문에 더더욱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포스터만 보면 전혀 기괴한 느낌이 아니었기에 어린 아이들도 다수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다. 작품들 자체로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과하게 설치된 신체모형 장식들과 전체적인 디스플레이가 불쾌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에 대한 공연한 걱정이 혼란을 더하자 미술관에서 더 머무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미술관을 빠져 나와 프랑크푸르트의 삭막한 빌딩숲 사이를 하염없이 걷다가도, 잃어버린 작품들을 생각하면 순간순간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 그림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같은 사연으로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선과 색으로 그려낼 수 없는 그림들이기 때문이다. 그 중 한 점은 런던의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놓친 아쉬움을 안고 1 1일 저녁 빅벤 건너편에 서서, 바로 하루 전 펼쳐졌던 불꽃놀이를 상상하며 몇 시간이고 그렸던 작품이었다. 내년 그맘때에는 런던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온도의 런던 공기를 다시 마실 기회는 이제 없는 것이다. 그 그림들을 하필 이 낯선 도시 어디엔가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 또한 마음에 걸렸다. 다른 작가들처럼 이웃 나라들까지 관광할 여력은 없었기 때문에 혼자 몇 날 며칠을 침대 하나 겨우 들어가는 비즈니스 호텔에서 지냈다. 어쩐지 저렴하다 했던 그 호텔은 중심가와의 거리는 가까웠지만 교통편이 제대로 닿지 않아 매번 꽤 긴 시간을 걸어야 했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자니 억울한 기분이 들어 매일 꾸역꾸역 시내로 향했다. 너무 작은 도시라 볼거리는 일찌감치 떨어지고, 유럽의 뉴욕이라는 거창한 별명에 걸맞는 야경 사진이라도 남기고자 이 다리 저 다리를 전전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잘 잡혔다 싶으면 다리 위를 지나는 슈트라센반 (독일의 트램)이 시야를 가로막는 통에 제대로 된 사진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지금 같아서는 빨리 런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다음 행선지는 노르웨이다. 돌아오는 비행편 결제 직전 마우스 스크롤을 잘못 건드려 오슬로행 티켓을 사고 만 것이다. 초저가 항공사의 정책이란 실로 오묘한데, 예를 들면 행선지를 변경하는 것보다 차라리 티켓을 하나 더 구매하는 편이 저렴하다든지, 탑승자명을 수정하는 데 티켓값의 세 배가 청구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시작은 영 어설펐으나, 때마침 북유럽 횡단을 구상 중이던 지인과 마음이 맞아 그녀의 일정에 맞춰 오슬로로 합류하게 되었다. 평생의 숙원인 오로라 관찰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도 이 갑작스런 여행에 한 몫을 했다.      







'Joy's Note > 미완의 에세이 Essay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런던에도 봄은 오더라  (0) 2015.11.27
노르웨이에서의 3일  (0) 2015.11.27
공포의 베드버그  (0) 2013.12.09
공간의 부재는 곧 절망  (0) 2013.12.09
발목 잡는 오렌지  (0) 2013.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