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y's Note/미완의 에세이 Essays 썸네일형 리스트형 두 번째 눈 없는 겨울 그렇게 돌아왔다-캔버라의 교환학생으로 #4두 번째 눈 없는 겨울 따사로운 가을 볕을 매일 같이 뽑아내던 태양이 더 이상은 재료가 없는지 뒤로 뒤로 물러만 간다. 교정 가득 수북이 내려앉은 노란 낙엽들만큼이나 열 여섯 명의 작업들도 각자의 서랍이 터져나갈 정도로 쌓였다. 학우들의 견제 아닌 견제 속에, 가능했던 모든 것들을 토해내며 살 떨리는 최종 평가를 해치운 나에게 춥고 황량한 캔버라의 7월을 선물하는 것은 자학에 가까운 행위였다. 고심 끝에 평소라면 절대 가지 않을 곳을 가기로 했다. 바로 브리즈번. 해외에 거주할 때만큼은 한국인 밀집지역을 기피하는 나이지만, 멜번과 캔버라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작은 기대감에 선택한 항로였다. 한 학기 동안 종종 담소를 나누곤 했던 도예 전공 교환학생 에이미.. 더보기 Printmaking & Drawing Workshop 그렇게 돌아왔다-캔버라의 교환학생으로 #3브리즈번에서 비워내기Printmaking & Drawing Workshop 이 곳에서의 한 학기는, 대외적 명분상으로는 내가 이전에 배워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시간이었지만 아니, 그것보다는 내 자아를 고요 속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사라졌다 돌아와 ‘간밤에 내 닭이 무슨 알을 낳았나’ 하고 지푸라기를 헤집어보는 어린 주인이 되는 어떤 놀이의 반복이었다. 전공이 달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한국에서의 빡빡한 학교생활에 비하면 수업도 과제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심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 나를 쫓던 대부분의 요소들이 순간 사라진 것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은,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큰 검은 작업용 책상과 큰 종이를 넣기에 넉넉.. 더보기 캔버라. 새와 밤 그렇게 돌아왔다-캔버라의 교환학생으로 #2캔버라, 새와 밤 1 아무것도 없다. 해야 할 일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작업과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도시. 아무 향도, 어떤 맛도 첨가되어있지 않은 정제된 수돗물과 같은 도시 캔버라. 걸어도 걸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풍경 속, 아주 멋없고, 우울하도록 솔직한 인공 호수가 있다. 여기서 만난 것은 사람도 건물도 아닌, 새들이다. 나는 이 호숫가에 앉아 정체 모를 검은 새의 일광욕을 넌지시 바라보다, 청둥오리들의 행렬에 길을 비켜주고, 동그란 열매를 부리로 아그작거리는 분홍가슴 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애써 플라타너스에서 시선을 돌린다. 짙으면서도 붉은 호주의 녹음이 황금으로 다시 피어나기까지, 노란 왕관을 쓴 새하얀 앵무새 코카.. 더보기 그렇게 돌아왔다-캔버라의 교환학생으로 #1. ANU, 너희들 그렇게 돌아왔다 캔버라의 교환학생으로 ANU, 너희들 겨우내 꽁꽁 언 몸이 풀려갈 때쯤 찾아온 공간 이동의 시간. 나는 불현듯 늦여름 위에 서있다. 봄 내음도 맡지 못한 채 다시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오고 싶었고, 오게 되었으니. 드디어 찾아온 개강. 아직 열기를 머금은 햇볕 아래, 학생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더할 수 없는 활기로 교정은 들썩였다. 반갑다고, 오랜만이라고.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지만 나도 교정 곳곳에 동일한 인사를 건네며 반가움을 표했다. 숲도, 이름 모를 새들 조차도 반갑고 또 반가웠기로. 이제는 방문객이 아닌, 학생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이제는 어깨너머로 마냥 기웃거리지 않아도 된다. 도서관에 당당하게 들어가도, 다리가 풀리도록 캠퍼스를 걸.. 더보기 서울 #4. 한 달을 울었다 한 달을 울었다 어느 곳을 가도, 친절한 은행 직원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사정은 알겠지만, 해외 대학으로 들어가는 학자금은 대출이 불가능해요.” 날이 갈수록 국제교류센터 조교님은 답을 재촉해 왔다. 학기가 2월 23일에 시작이라니 1월 안에는 답을 드려야 했다. 설탕이 다 떨어져 가는 솜사탕 기계 노즐에다 젓가락을 휘휘 돌려 대는 것 마냥, 나는 그곳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억지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말에 시간표까지 적힌 수학허가서를 전달받자, 나의 온 몸엔 헬륨가스가 차 올랐다. 가느다란 정신줄만 놓으면 당장이라도 날아갈 모양새로. 귀국 직전 캔버라에 머물면서 매일 같이 보던 그 하얀 건물이 머릿속에서 만져지는 듯 했다. 크지 않아도 아늑했던, 햇살 가득한 미대 도서관.. 더보기 서울 #3. 졸업전시 졸업전시 그런 거다. 지칠 대로 지친 팽팽한 줄다리기 끝자락에야, 펄떡거리는 대어가 튀어 오른다. 전시 5일전 떨어진 지도 교수님의 지시는 청천벽력 같았다.“나온 그림들 가지고 책 하나 해.” 나는 4일간 1인칭 화자를 주인공으로 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써 내려갔다. 시놉시스는 대략 이렇다. 숨막히는 도심 속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 화자는 태양의 권유로 길을 떠나고, 여정 끝에 닿은 호수에서 바람결에 춤추는 꽃들을 만난다. 꽃들의 춤을, 그리고 그들의 삶을 접하면서 화자는 깨닫는다. 내가 선 곳이 바로 작은 천국임을. 촉박한 시간 탓에 두 권밖에 제작하지 못했지만 졸업전시 당일, 나는 수십 점의 원화를 하나로 엮은 나의 이야기‘작은 천국의 무희’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내가 속한 미술.. 더보기 서울 #2. 상사병과 기적 서울 #2. 상사병과 기적 교환학생 선발 9월. 남반구의 겨울에 적응되자마자 단번에 늦여름으로, 나는 계절과 공간을 건너 뛰어 세 학기 만에 모교를 다시 밟았다. 졸업여행도 놓치고,졸업전시의 부담만 마음 한 켠에 고스란히 아려오는 4학년 복학생이 된 것이다. 남은 두 학기 중 2학기를 먼저 시작하게 되어 졸업전시를 마치고도 동기들처럼 깔끔하게 학교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흐름상 졸업 전시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1학기 수업들을 전시를 치른 후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 졸업 전시 자체보다 더 큰 부담이었다.고민하던 중 뒤늦게 발견한 교환학생 모집공고에, 나는 무릎을 쳤다. 자매학교 명단에 호주국립대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국제교류센터로 달려가, 조교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했다. 미리 준비해.. 더보기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9. 호주의 서울대 ANU 호주의 서울대 ANU 내가 서울대 교정을 제대로 거닐어 본 건 천문학과 주최의 청소년 천문관측 강좌에 오갔던 그때뿐이었지만 그 어렴풋한 인상은 ANU에 대해 차츰차츰 알아갈수록 오버랩 되어 되살아났다. 자국 최고의 법대, 의대, 공대, 인문대, 상경대가 있으면서, 음대와 미대를 포함한 예술대학도 그 대외적인 예우에 있어 빠짐이 없다는 닮은 점이 있기도 했고 교정의 느낌도 비슷했다. 예쁘다거나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건물들의 간격이 매우 넓고 산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녹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다. 예술대학은 음대와 미대가 나뉘어져 있는데, Canberra School of Art 라는 단과대명이 박힌 새하얀 건물이 바로 미술대학이다. 정원은 각 과의 한 학번당 12명 정도로, 나의 모교에서는 절대 .. 더보기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8. 캔버라로의 초대 캔버라로의 초대 멜번이 고향인 영국계 호주인 친구의 제안으로 한국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 3주를 그녀의 학교가 있는 캔버라에서 보내기로 했다. 캔버라는 멜번과 시드니 사이에 위치한 호주의 행정수도이다.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했던 이 단거리 여행은 시작부터 결코 만만치 않았다. 저가 항공계의 짐승, 타이거 에어웨이즈 항공편을 예약한 것이 화근이었다. 저가 항공사답게 체크인 장소가 공항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해있었던 것이다. 몇 번이고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지는 이민 가방을 일으키며 정비소로나 쓰일 법한 후미진 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녹초가 된 상태라 직원에게 말을 건넬 힘도 없었는데, 앞에 선 중동계 남자가 갑자기 직원과 싸우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출발 45분전까지 와야지만 탑승이 가능하니 돌아가라는 것.. 더보기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7. 반짝이던 너의 마지막 반짝이던 너의 마지막 담담한 마지막 밤이었다. 겨울 내음이 날 때쯤에는 당연히 헤어짐이 있을 거라고, 수도 없이 되뇌던 가을이었으니. 안녕을 고할 때는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주어야 한다는 나름의 이별 공식에 따라, 나는 리알토 타워 전망대에 올랐다. 가장 높은 곳보다는 조금 아래. 그래야 너를 잘 볼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가장 높고 세련된 전망대는 멜번 스카이라인의 꼭짓점을 장식하고 있는 유레카 타워의 88층 스카이덱이지만 그곳에 서면 내가 너무 잘나서 은은한 밤의 불빛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다. 촌스럽도록 우직한 리알토의 머리에 올라야, 부러질 듯 곱고 차가운 유레카를 만나는 것이다. 시리고 짙푸른 바람에 평원을 메운 별 구슬들이 휩쓸려 갈까, 말없는 도시는 애써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 더보기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6. 5월의 가을이란 5월의 가을이란 소생한 만물들이 그 싱그러움의 절정을 찍어야 할 5월에 모든 것이 스러져 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여름 햇살이 폭포수처럼 내리는 12월도 담담히 보냈고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닌데, 없던 것을 얻은 것과 있던 것을 잃은 것은 그 생경함의 정도가 놀라우리만치 달랐다. 기온은 봄과 그리 다를 것도 없었지만 마음 속 온도계는 늘 0을 가리켰다. 그 때문인지 체감온도가 급격히 낮아져 평소 같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그런 바람에도 쉬이 옷깃을 여미게 되었다. 때가 되어 찾아온 가을인데도, 나는 요절한 친구를 보내는 것만치 5월의 이름이 안쓰러웠다. 눈도 찾아오지 않는 텅 빈 겨울이 오기 전에 거리 전시는 이만 접어야겠다고, 청소차에 빨려 들어가는 낙엽들을 보며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 더보기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5. 첫 갤러리 계약 첫 갤러리 계약 기회는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오는데 어떤 것은 그대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고 그 기회를 잡았었더라도 그것을 손에 쥐었던 그때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면, 함께한 기념사진조차 남겨두지 않았을 정도로 그 기회를 홀대했다면, 그건 그야말로 스쳐간 인연에 불과한 것이다. 전면 유리로 된 외벽 안쪽에 분명 내 그림들이 고운 액자에 안겨 전시되어있었고, 나는 그 앞을 수도 없이 지나다녔다. 그 길을 종종 다니는 친구들은 늘 어제 네 그림을 보았노라며 재잘댔고, 그 앞을 지나던 어떤 이들은 그 그림을 좋은 값에 들여가기도 했다. 집에서 대각선으로 20미터도 채 떨어져있지 않던 그 작은 갤러리. 작가 인생 처음으로 계약을 성사시킨 역사적인 곳이었음.. 더보기 어 돌러 머쉬룸!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4어 돌러 머쉬룸! 내가 외국인 노동자 겸 자취생으로 살면서 생활비를 크게 아낄 수 있었던 건 재래 시장을 애용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었던 퀸 빅토리아 마켓은 나 같은 참새로서는 지나치기 힘든 방앗간이었다. 이곳엔 야채와 과일을 비롯한 농산물 이외에도 싱싱한 꽃과 각종 관광 기념품, 오팔 장신구, 옷, 정품 어그부츠까지 없는 것이 없는데 그 값은 대형마트나 상점보다 훨씬 저렴하다. 운이 좋으면 파격적인 흥정도 가능하며, 휴일인 월요일과 수요일의 전날, 그러니까 일요일, 화요일 마감시간을 공략하면 푼돈으로 질 좋은 식재료를 대량으로 구비할 수 있다. 실외에 위치한 농산품 코너는 그 구조상 변변한 식품보관시설이 없어 상인들 모두 경쟁적으로 판매에 임한다.. 더보기 도심 속 공생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3도심 속 공생 -갈매기 형님들 멜번 땅을 밟은 지 한 달이 채 못되었을 무렵, 처음으로 잉크를 꺼내 슥슥 그려낸 것은 이곳의 첫인상에 관한 나의 총평이었다. 바다를 옆에 끼고 살아본 적이 없는 내게 갈매기는 바다에서 날아온 쪽지와도 같은 반가운 존재였다. 말끔하게 빠진 순백의 몸체 위에 늦봄의 햇살이 반지르르 흘러내리는 그 모습을 도심 속에서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주립도서관 앞 푸른 잔디 위에는 물 반 고기 반이 아닌, 사람 반 갈매기 반의 풍경이 맑은 날이면 어김없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멀리 있어 반갑던 이 녀석들은 함께 살면 살수록 그 실체를 드러내었고,나중에는 아련하기는커녕 그저 비둘기보다 크고 먹성 좋은 비둘기 8촌쯤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길바닥에 누군가 감.. 더보기 버스커로 살기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2버스커로 살기 - 나의 첫 소장자 뙤약볕 아래, 여느 날처럼 자리를 펴놓고 잉크 드로잉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고개를 드니 엄청난 속도로 이쪽으로 걸어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묵직한 컴퓨터 부품 박스를 양손에 움켜쥐고 고개는 꼿꼿이 정면을 향한 것이 누가 보아도 바삐 지나갈 사람이었다. 스쳐 지나는 찰나, 남자는 갑자기 두 세 걸음을 되돌아 오더니만 맨 앞쪽에 놓인 작은 드로잉을 사고 싶다고 했다. 원칙적으로 버스커는 도네이션은 받을 수 있어도 가진 것을 판매하지는 못하게 되어있다. 매우 형식적인 원칙이라 경찰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긴 하지만, 별로 팔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무슨 말은 해야 했다. “나는 그림 값을 정해본 적이 없는데……..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