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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s Note/단상 fragmentary thoughts

2014년, 나의 12월.





쌓이지 않는 눈이 쉴 틈 없이 내리는 오후. 두 건의 헤어짐을 다루려 한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미안합니다."

회사가 말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미안해."

그도 이야기 한다.



큰 디자인 전시 건이 끝나고 거기에서 파생된 업무들도 모두 정리되었다. 


이 프로젝트 이후에 대한 사업 방향을 회사부터가 잡지 못했고, 

이 모든 상황의 시발점, 즉 채용 과정에서 발생된 헤드헌터와 회사 간의 미스커뮤니케이션이 가져온 결과는 극명했다. 

이 회사에서는 해당 전시만을 위한 단기 계약직을 채용했어야 마땅하다. 

헤드헌터는 구인업체의 근무 조건과 회사 상황(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항목에 있어서는 더더욱)을 구직자가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했어야 한다. 


전시 직후 상설 전시관으로 사용하겠다던 공간은 그 활용도가 불투명해졌고 

인쇄물에 대한 기획조차도 되도록이면 하지 않겠다는 것이 최근에서야 밝힌 회사의 입장이었다. 

전시 기획자로 채용된 나와 동료는 우리가 가진 직무 역량과는 다소 거리가 먼 제작 관련 업무를 떠맡거나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전시를 위해 쏟은 우리의 땀과, 언젠가는 결실로 돌아올 씨앗(직접 설명하며 수집한 수많은 거래처 리스트)들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한 차례의 PT를 치르고, 그에 대한 후한 평가를 받은 이후 수 일 간 업무가 없었다. 

우리가 먼저 걸어 나가기를 바라는 듯 했던, 고학력자에 대한 오너의 언사와 행동들은 오늘에서야 그 의도가 명확해졌다. 

퇴사 의사를 밝히자 마자 술술 풀어져 나오던 말들.


'당신의 업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다른 일을 잔뜩 줄까도 생각했다. 

당신은 이 업계에 있기에는 아까운 출중한 사람이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미안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중에 술 한 잔 하자.'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렸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싱겁게 끝났다. 


이것 저것 두루 할 줄 안다는 것이 내게는 독이 되어왔던 것 같다. 

정착에 대한 욕구는 해가 갈수록 커져 가는데, 머물 곳은 늘 마땅치가 않다. 

20대 초반부터, 더 크게 보고, 넓게 품어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렇게 먼 곳까지 본능처럼 떠돌아 다녔던 것이고, 지금도 상황은 동일하다. 


그래도. 그래도.

정처 없이 수렵을 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유목민이 되어있고, 내 씨앗을 마음 놓고 뿌릴 농지까지 봐 두었다.

설렘과 열심, 확신을 가지고 일궈나갈 일만 남아있다. 누구든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농작물을 가꿀 것이다.


내 30대의 포문. 

다시 한 번, 조급하지 말자.


...


눈과 함께 어둠이 내리는 지금은,

미안하다는 그에게 가보려고 한다. 

단호했던 어제의 마음이 눈 녹듯 녹을 것 같아 걱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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