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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s Note/단상 fragmentary thoughts

매일, 마주하는 것들.

 

 

 

 

 

매일, 마주하는 것들.

 

꼭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매일 그 자리에 있어줌으로써 어떤 일정한 무게로 나를, 또 나의 일상을 유지시키고 있는 그런 것들.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매일 보는 이 어딘지도 모르는 바다와,

오후면 머리 언저리를 지긋이 누르는, 이제는 당연하고 가벼울 뿐인 무언중압감.

정서향인 탓에 6시 즈음이면 블라인드 사이로 정확히 눈을 맞추는, 아주 동그란 석양.

멀뚱히 서있는 탁상달력과 어지럽게 꽂힌 두 프로젝트의 각기 다른 서류들.

 

 

"아, 나는 정말 회사 체질이 아니야. 도저히 그렇게는 못 살아."

 

"회사 체질인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3년 여 전 홍대의 어느 카페에서 친구에게 무심코 던졌던 내 말이 얼마나 우스운 말이었는지,

말에도 같은 시각에 눈을 뜨는 내 몸뚱이가 이제서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무력하게 위의 말을 읊조렸던 그 친구는 여전히 같은 생활 속에 묻혀 조용히 몸부림 치고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해야하는, 예전에는 멍청하게 여기던 것들을,

그 또한 '하고 싶은 일' 혹은 '할 만한 일'로 여겨지도록 내 인식 자체를 고치는 것.

아니, 그보다는 의식되지 않을 정도로 무뎌져 버리는 것.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한 이 생활이 지속되다 보면,

어느덧 나는 더이상 예술가일 수 없는 누군가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내 또래들이 종종 그러하듯 몇 년 이내에, 누군가의 성실한 아내가 되고자 모든 것을 놓고 싶어질 수도 있겠다.

그런 걸 사람들은 운명, 또는 로맨스라고 칭하는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든 작가로서의 시각을 놓지 않고 살면 된다 했던,

당신이 몸소 그리 살고 있는 지인의 말을 가끔씩 아주 무심하게 떠올린다.

그가 그랬듯 지금으로부터 10년이 지나도 다음 화폭을 마주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두려운 건 전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칼 끝처럼 예민해진 채로 지내온 지난 10여년을 의도치 않게 정리하는 중이다.

밤새도록 내면으로만 파고들던 모든 습관의 흐름이,

정반대의 생활 패턴을 가지게 되면서 하나 둘 말라간다.

 

이 시점을 돌면 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엇이 되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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