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걷는 내내 입에 무언가를 털어넣고 와그작와그작 씹는데 아무런 맛이 나질 않는다. 짙고 탁한 하늘. 김포공항의 정적. 깜빡이는 관제탑. 적당히 무른 공기. 2월 내 생일에 선물 받은 모바일 상품권 하나를 바꾸려고 거기까지 갔는데 (첫 번째 문제는 그 공급처가 도무지 내 동선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겠지만) 결국은
전산망이 닫힌 10분 후에 도착했다는 이유로 다른 날에 오라고.
40여일이 지나서야 겨우 찾아갔는데 뭐, 이렇다면 다시 정신차릴 즈음 유효기간은 훌쩍 지나있을 것이 뻔하다. 차라리 주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은가? 하기야 주는 사람이 이게 휴지조각이 될 줄을 알고 주었겠냐마는.
보통 연봉에 저녁 시간만 제대로 지켜주면 된다고 면접 때 분명 이야기 했는데. 저녁 제대로 먹기는 이미 바랄 대상이 아니고, 그냥 뭐라도 입에 욱여넣는 잠깐이 허락되면 다행인 것이다.아이 상대하는 일은 (그리고 그 부모를 상대하는 일은) 웬만하면 다시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었는데,이제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때로는 경이롭고 때로는 한심한 인격체들과 매일 부대끼고 있다.
뭘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싶기도, 어쩌면 그렇게 무념무상일까 싶기도 한.
그러니까 '이 시간을 돌면 무엇이 또 서 있을까' 고민하던 어느 여름 날의 회사 컴퓨터 앞에서, 나는 또다시 시간과 공간을 성큼성큼 걸어
이제까지 거쳐온 것보다 복잡한 또다른 부피의 시간과 공간,
미래에 대한 기대들로 한껏 뒤엉킨 꿈의 무덤 -혹은 인큐베이터- 안에 숨을 내쉴 틈 없이 갇혀 있는 것이다.
3개월의 공백 동안 미칠 것 같은 자괴감을 뭉그러뜨리고 새 회사를 찾던 중 걸려온 의문의 전화.그걸 받은 건 실수일까 다행일까. 어떻게도 단정할 수는 없겠지.
어쨌든 나는 이 공간을, 이 사람들을 좀 더 오랜 시간동안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어떤 이유에서건 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힘겨운 이동을 하는 데에 호의를 베풀고 싶다. 막연한 사명감으로 몸을 던지겠다는 것은 이상이요 망상이라고 생각한다. 내버려 두라는 사람은 내버려 두고, 도와달라는 사람은 도와줄 것이다. 나는 이 정도만 염두에 두고 해도 남들에 비해 과한 에너지를 쏟는 사람이니까.강아지가 어떻게 외로운지 알고 있으니까.깜냥을 넘어선 친절을 기다리는 것이 어떤 종류의 것들인지 잊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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