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밝아오는 새벽빛을 억누르며 어두움을 기록했다.
이미 광고와 각종 기사 링크들로 도배가 된 무덤 같은 타임라인이니 내 작은 돌 하나 정도는 허락되겠지, 하고.
'모든 관계가 애를 써야만 지속되는 건 아닐 텐데. (아니었음 좋겠네.) 한 곳에 오래 산 적 없어서도 그렇지만 편안한 동네 친구 하나 못 만들고 산 것이 아쉽다. 지나온 타임라인 위에는 사실 내성적이라고 괴롭힘 당하거나 외모 때문에 짝사랑마저 눈총 받거나 그런 것들을 만회하려 부단히 애쓰다 완급조절에 실패하거나 그 외에도 빨리 잊혀져버렸으면, 했던 장면들이 산재해 있어 내게 있어 완전히 빛나는 시절이라 추억할 만한 구간이란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때 떠올리던 미래의 어느 한 시점에 이렇게 밀려밀려왔는데 지금을 살면서도 과연 오늘이 그리울 만한 날인가 싶다. 그런 시간대에 진입할 때도 되었지 이제. 요즘들어 갑자기 나타난 비문증이나 가라앉았으면...'
어떤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고요한 밤 차분히 머무르던 생각들이 태양의 열기에 쫓겨 물러가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이 생각을 나의 영역 안에만 둔다면 미래의 나는 언제든 나의 현재까지도 바꾸려 들 것이 뻔하기 때문에,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도 있다.
사실 이 작은 메모의 끝자락은 내겐 음영이 완전히 빠진 희망 그 자체인데,
지나가던 심성 고운 친구들은 못내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나는 너의 그런 시절을 기억해.'
'잔잔한 노래가 조용조용 마음을 치듯 순간 순간이 소중하지.'
'뭔가 폭발하려는 듯한 순간인듯. 술 한 잔 하자.'
'올 것이 왔군. 보자.'
'내가 있잖아.'
그러자 위로가 필요한지조차 느끼지 못했던 딱딱한 마음이 그제야 인정하는 것이다.
봐, 너도 도움이 필요하잖아.
시간이나 상황에 대한 체감이란 것도 체질처럼 사람마다 기본치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안 쓰는 근육을 쓰듯이 다르게 생각해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안되는 게 있으니 주변의 시점을 빌려보는 거고.
같은 시간을 지나온 증인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감을 줄 때도 있다.
오늘은 이들 중 한 명을 만났다.
그림을,또 음악을 호흡으로 여기는,
그 호흡을 지키기 위해 지금은 심신을 단단히 하고 있는 동병상련의 친구.
지금은 세간의 관심을 얻은 밴드 후배가 제 선배들을 어떻게 대했었는지.
(기이한 행적으로 그와 비슷했던 같은 과 선배를 떠올리게 함)
힘들던 치료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가족들과의 담화로 결정한 앞으로의 방향은 무엇인지에 관한,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
각자의 자리에서 인디로 활동하는 학교 때 식구들이 많은데,
진실한 만큼 잘 되는 세상이라면 좋으련만.
여리면 여린 만큼 먹잇감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포식자가 아닌 비슷한 처지의 상대에게마저.
열심히 살아남아서 음악으로도 빛을 보자고, 그런 위로 겸 다짐을 건네며.
오늘도 여지없는 야근으로 총총총 사라지는 친구의 가슴팍을 괜시리 툭툭 친다.
종일 빗물 머금은 공기로 숨이 턱턱 막히더니만, 이제서 빗길이 열렸는지 창밖이 요란하다.
터질 듯 터질 듯 터지지 않던 내 속의 무엇이 한껏 영글어 가는 서른의 여름.
한없이 씨앗을 흩뿌릴 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
아무렇게나, 아무 곳에서나 흘리지 않으려, 다시 생각하고 또 다시 응축시킨다.
세대를 한정하여서는 안 된다. 어떠한 손짓으로도 강요하여서는 안 된다.
마주하는 모두에게 다른 그림이 그려지게 하자.
각자의 분량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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