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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s Note

서울 #2. 상사병과 기적 서울 #2. 상사병과 기적 교환학생 선발 9월. 남반구의 겨울에 적응되자마자 단번에 늦여름으로, 나는 계절과 공간을 건너 뛰어 세 학기 만에 모교를 다시 밟았다. 졸업여행도 놓치고,졸업전시의 부담만 마음 한 켠에 고스란히 아려오는 4학년 복학생이 된 것이다. 남은 두 학기 중 2학기를 먼저 시작하게 되어 졸업전시를 마치고도 동기들처럼 깔끔하게 학교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흐름상 졸업 전시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1학기 수업들을 전시를 치른 후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 졸업 전시 자체보다 더 큰 부담이었다.고민하던 중 뒤늦게 발견한 교환학생 모집공고에, 나는 무릎을 쳤다. 자매학교 명단에 호주국립대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국제교류센터로 달려가, 조교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했다. 미리 준비해.. 더보기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9. 호주의 서울대 ANU 호주의 서울대 ANU 내가 서울대 교정을 제대로 거닐어 본 건 천문학과 주최의 청소년 천문관측 강좌에 오갔던 그때뿐이었지만 그 어렴풋한 인상은 ANU에 대해 차츰차츰 알아갈수록 오버랩 되어 되살아났다. 자국 최고의 법대, 의대, 공대, 인문대, 상경대가 있으면서, 음대와 미대를 포함한 예술대학도 그 대외적인 예우에 있어 빠짐이 없다는 닮은 점이 있기도 했고 교정의 느낌도 비슷했다. 예쁘다거나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건물들의 간격이 매우 넓고 산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녹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다. 예술대학은 음대와 미대가 나뉘어져 있는데, Canberra School of Art 라는 단과대명이 박힌 새하얀 건물이 바로 미술대학이다. 정원은 각 과의 한 학번당 12명 정도로, 나의 모교에서는 절대 .. 더보기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8. 캔버라로의 초대 캔버라로의 초대 멜번이 고향인 영국계 호주인 친구의 제안으로 한국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 3주를 그녀의 학교가 있는 캔버라에서 보내기로 했다. 캔버라는 멜번과 시드니 사이에 위치한 호주의 행정수도이다.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했던 이 단거리 여행은 시작부터 결코 만만치 않았다. 저가 항공계의 짐승, 타이거 에어웨이즈 항공편을 예약한 것이 화근이었다. 저가 항공사답게 체크인 장소가 공항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해있었던 것이다. 몇 번이고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지는 이민 가방을 일으키며 정비소로나 쓰일 법한 후미진 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녹초가 된 상태라 직원에게 말을 건넬 힘도 없었는데, 앞에 선 중동계 남자가 갑자기 직원과 싸우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출발 45분전까지 와야지만 탑승이 가능하니 돌아가라는 것.. 더보기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7. 반짝이던 너의 마지막 반짝이던 너의 마지막 담담한 마지막 밤이었다. 겨울 내음이 날 때쯤에는 당연히 헤어짐이 있을 거라고, 수도 없이 되뇌던 가을이었으니. 안녕을 고할 때는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주어야 한다는 나름의 이별 공식에 따라, 나는 리알토 타워 전망대에 올랐다. 가장 높은 곳보다는 조금 아래. 그래야 너를 잘 볼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가장 높고 세련된 전망대는 멜번 스카이라인의 꼭짓점을 장식하고 있는 유레카 타워의 88층 스카이덱이지만 그곳에 서면 내가 너무 잘나서 은은한 밤의 불빛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다. 촌스럽도록 우직한 리알토의 머리에 올라야, 부러질 듯 곱고 차가운 유레카를 만나는 것이다. 시리고 짙푸른 바람에 평원을 메운 별 구슬들이 휩쓸려 갈까, 말없는 도시는 애써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 더보기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6. 5월의 가을이란 5월의 가을이란 소생한 만물들이 그 싱그러움의 절정을 찍어야 할 5월에 모든 것이 스러져 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여름 햇살이 폭포수처럼 내리는 12월도 담담히 보냈고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닌데, 없던 것을 얻은 것과 있던 것을 잃은 것은 그 생경함의 정도가 놀라우리만치 달랐다. 기온은 봄과 그리 다를 것도 없었지만 마음 속 온도계는 늘 0을 가리켰다. 그 때문인지 체감온도가 급격히 낮아져 평소 같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그런 바람에도 쉬이 옷깃을 여미게 되었다. 때가 되어 찾아온 가을인데도, 나는 요절한 친구를 보내는 것만치 5월의 이름이 안쓰러웠다. 눈도 찾아오지 않는 텅 빈 겨울이 오기 전에 거리 전시는 이만 접어야겠다고, 청소차에 빨려 들어가는 낙엽들을 보며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 더보기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5. 첫 갤러리 계약 첫 갤러리 계약 기회는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오는데 어떤 것은 그대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고 그 기회를 잡았었더라도 그것을 손에 쥐었던 그때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면, 함께한 기념사진조차 남겨두지 않았을 정도로 그 기회를 홀대했다면, 그건 그야말로 스쳐간 인연에 불과한 것이다. 전면 유리로 된 외벽 안쪽에 분명 내 그림들이 고운 액자에 안겨 전시되어있었고, 나는 그 앞을 수도 없이 지나다녔다. 그 길을 종종 다니는 친구들은 늘 어제 네 그림을 보았노라며 재잘댔고, 그 앞을 지나던 어떤 이들은 그 그림을 좋은 값에 들여가기도 했다. 집에서 대각선으로 20미터도 채 떨어져있지 않던 그 작은 갤러리. 작가 인생 처음으로 계약을 성사시킨 역사적인 곳이었음.. 더보기
어 돌러 머쉬룸!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4어 돌러 머쉬룸! 내가 외국인 노동자 겸 자취생으로 살면서 생활비를 크게 아낄 수 있었던 건 재래 시장을 애용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었던 퀸 빅토리아 마켓은 나 같은 참새로서는 지나치기 힘든 방앗간이었다. 이곳엔 야채와 과일을 비롯한 농산물 이외에도 싱싱한 꽃과 각종 관광 기념품, 오팔 장신구, 옷, 정품 어그부츠까지 없는 것이 없는데 그 값은 대형마트나 상점보다 훨씬 저렴하다. 운이 좋으면 파격적인 흥정도 가능하며, 휴일인 월요일과 수요일의 전날, 그러니까 일요일, 화요일 마감시간을 공략하면 푼돈으로 질 좋은 식재료를 대량으로 구비할 수 있다. 실외에 위치한 농산품 코너는 그 구조상 변변한 식품보관시설이 없어 상인들 모두 경쟁적으로 판매에 임한다.. 더보기
도심 속 공생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3도심 속 공생 -갈매기 형님들 멜번 땅을 밟은 지 한 달이 채 못되었을 무렵, 처음으로 잉크를 꺼내 슥슥 그려낸 것은 이곳의 첫인상에 관한 나의 총평이었다. 바다를 옆에 끼고 살아본 적이 없는 내게 갈매기는 바다에서 날아온 쪽지와도 같은 반가운 존재였다. 말끔하게 빠진 순백의 몸체 위에 늦봄의 햇살이 반지르르 흘러내리는 그 모습을 도심 속에서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주립도서관 앞 푸른 잔디 위에는 물 반 고기 반이 아닌, 사람 반 갈매기 반의 풍경이 맑은 날이면 어김없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멀리 있어 반갑던 이 녀석들은 함께 살면 살수록 그 실체를 드러내었고,나중에는 아련하기는커녕 그저 비둘기보다 크고 먹성 좋은 비둘기 8촌쯤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길바닥에 누군가 감.. 더보기
버스커로 살기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2버스커로 살기 - 나의 첫 소장자 뙤약볕 아래, 여느 날처럼 자리를 펴놓고 잉크 드로잉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고개를 드니 엄청난 속도로 이쪽으로 걸어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묵직한 컴퓨터 부품 박스를 양손에 움켜쥐고 고개는 꼿꼿이 정면을 향한 것이 누가 보아도 바삐 지나갈 사람이었다. 스쳐 지나는 찰나, 남자는 갑자기 두 세 걸음을 되돌아 오더니만 맨 앞쪽에 놓인 작은 드로잉을 사고 싶다고 했다. 원칙적으로 버스커는 도네이션은 받을 수 있어도 가진 것을 판매하지는 못하게 되어있다. 매우 형식적인 원칙이라 경찰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긴 하지만, 별로 팔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무슨 말은 해야 했다. “나는 그림 값을 정해본 적이 없는데…….. 더보기
나의 도시 멜번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1나의 도시, 멜번 서울 태생인 내가 난생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가 된 곳, 멜번. 원체 서울이 고향답지 못한 대도시이다 보니 이 장난감 같은 도시는 금세 내게 제2의 고향이 되어주었다. 준비단계에서 다른 많은 도시들을 제쳐두고 멜번을 선택했던 이유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 기록되었던 그 알량한 정보뭉치들은 이 땅을 밟음과 동시에 인식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강렬한 햇빛으로 선명하게 살아난 색들이 하늘과 건물들, 거리와 사람들을 휘감으며 일렁였다. 호주에 가니 입을 옷이 그렇게도 없더란 푸념 일색이던 사람들에게 돌연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을 만큼, 내 취향에는 꼭 맞는 오색찬란한 옷들 천지였다. 대체 무슨 연고로 추가요금까지 내고 꾸역꾸역 옷가지들을 쑤셔왔던가! 빌딩.. 더보기
휴학, 그것으로 안녕 서울 #1. 항로선회 휴학, 그것으로 안녕 2006년 겨울, 3학년을 마치고 공황상태가 찾아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 믿고 해오던 많은 것들이 실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눈치채버렸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는 3년을 보내놓고도 내가 시각디자인이라는 광범위한 울타리 안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전공영역 중에서는 영상 파트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었지만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까지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한계선이었다. 글은 늘 쓰던 것이고 할 말도 많지만 그것들을 표현할 방법, 즉 매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도 애매했고 그렇다고 그대로 계속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뾰족한 답도 대안도 나오지 않던 상황 속에서 나는 내가 속한 모든 .. 더보기
미완의 에세이. 6/14 2013년 여름, 대학 동기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런던에 가고 싶다고. 그곳은 어땠느냐고. 퇴근길에 책상 한편에 두었던 에세이 초고를 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당시에 쓰고 있던 부분이라 런던 챕터만 따로 프린트해 둔 것이었다. '런던에 속았다'는 챕터 소제목 그대로, 나는 런던행을 그리 추천하는 입장은 아니다. 나와의 공통분모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 하루 저녁을 소모한 이런저런 경험담과, 머리 셋을 모아 이리저리 짜낸 현실적 대안들이 도움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녀는 결국 런던행을 택하지 않았고, 현재 국내에서 만족할 만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대학 동기라 해봤자 서로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관계가 되어버리기 십상이지만 이만큼 성숙해진 (혹은 능글맞아진) 모습들로 유쾌한 저녁을.. 더보기
매일, 마주하는 것들. 매일, 마주하는 것들. 꼭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매일 그 자리에 있어줌으로써 어떤 일정한 무게로 나를, 또 나의 일상을 유지시키고 있는 그런 것들.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매일 보는 이 어딘지도 모르는 바다와, 오후면 머리 언저리를 지긋이 누르는, 이제는 당연하고 가벼울 뿐인 무언의 중압감. 정서향인 탓에 6시 즈음이면 블라인드 사이로 정확히 눈을 맞추는, 아주 동그란 석양. 멀뚱히 서있는 탁상달력과 어지럽게 꽂힌 두 프로젝트의 각기 다른 서류들. "아, 나는 정말 회사 체질이 아니야. 도저히 그렇게는 못 살아." "회사 체질인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3년 여 전 홍대의 어느 카페에서 친구에게 무심코 던졌던 내 말이 얼마나 우스운 말이었는지, 주말에도 같은 시각에 눈을 뜨는 내 몸뚱이.. 더보기
[에세이] 여행.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여행.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두어 번 출판사에 의뢰를 하다 거절당한 후에, 천천히 완성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7년째 아주 느리게 써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아주 느린 행보조차도 얼마간 멈추었었고. 나는 작가가 아니었던 적이 없지만, 현재를 채운 내 삶의 형식은 표면적으로는 '회사원'으로 규정된다. 물론 이 형식 안에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련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사회는. 아니, 회사는 늘 깊이보다는 구색 좋은 어떤 것을 끝없이 뱉어 내기를 요구한다. 때로 몸서리쳐지는 순간들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이 모든 것들이 본연의 자유로 되돌아가기 위한 과정임을, 지나온 길을 찬찬히 돌아보며 되새길 뿐. 부제에 '그림 에세이'라고는 붙여놓았지만 이 글은 그림의 메시지를 차용하여 풀어가는 .. 더보기
늘, 떠나고 싶다. 떠났던 사연들, 또 떠나갔던 곳에서 떠나온 이야기들을 죽 정리하고 있다.제대로 양면 프린트도 못해서 이리저리 뒤집어 교정하던 지난 연말.이제는 자리 잡고 가만히 있어야지, 다짐하고그렇게 몇개월 잘 살았는데. 잘 숨기고 있었던 날이 어제 오늘 갑작스레 정신을 갈라 놓는다.흘려도 되지 않을 눈물을 내게 그리 호의적이지도 않은 누군가 앞에서 참지 못했고,다쳐도 되지 않을 사람이 타격을 입었으며또,정든 착한 이들에 서운함을 안겼으며...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던 대가로 적지 않은 이들이 쓸 데 없는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다. 나는 혼자여야 하고,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 그것이 스스로 싫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본성이라, 또 무엇을 향해 떠나야 할 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지만어쨌든 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