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인지 악연인지-런던의 유학생으로 #9
로빈과 이안
석사과정의 커리큘럼은 의외로 간단하다. 주제나 소재를 던져주면 ‘알아서’ 결과물을
만들어 오는 것이다. 진행 과정에서 두 세 명의 교수 혹은 강사들에게 꾸준히 조언을
듣는다. 조언이 필요한 만큼의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면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발표를 할 때마다 메인 교수 로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잠깐, 그건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닌데?’ 였다. 처음 입학허가를 받던 시점부터 우려했던 부분들이
슬슬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작업의 흐름은 그 형태적으로는 점점 더
추상에 가까워져 갔고, 불행히도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단어는 ‘예시를 들어 이해하
기 쉽게 설명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가 재구성하고 표현하려는 대상 자체
가 대개는 형태를 가지지 않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내가 설명한다
는 행위 자체를 포기하지 않았음에도 결과물은 상대가 쉬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
이 되곤 했다. 물론 로빈이 내가 무엇을 시도하고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가 일관적으로 제시하는 방향은 내가 가진 색과 자료들로 엮었을 경
우 억지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프로젝트가 거듭되면서 이러한 실랑이 또한
지속되었고, 외부적인 문제가 겹치면서 피로감은 극대화되었다. 그만두고 싶다. 그
생각뿐이었다. 고민 끝에 디자인 대학을 총괄하는 이안 노블 교수와의 면담을 신청했
다.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지만 첫 전공을 회화에서 출발하여 영상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다뤄온 사람이었다. 면담은 1층 로비 근처에 있는 긴 작업테이블에서 이뤄졌
다. 그는 내가 왜 힘들게 시작한 것을 포기하려 하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소상히
듣고 싶어했다. 한 시간 남짓 되었을까,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네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매체는 무엇이 되었든 문제될 게 없어. 내가
이제부터 일러스트레이션 수업에 직접 관여하도록 할 테니 그만두지 말고 계속 해보
도록 해.”
어안이 벙벙하다. 조금은 당혹스럽기도 하다.
학업을 중단할 경우의 학비 처리 문제를 비롯한 이런저런 행정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생각지 않게 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려 준 것이다. 그 다음
수업부터는 이안이 직접 들어와 코멘트를 해주기 시작했고, 덕분에 나는 이전보다 형
식적인 제약을 받지 않고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그를 제외하고는 그닥 내게
호응해 주는 이는 없었지만,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졸업 전
시 당일, 그는 조용히 전시장을 둘러보더니 내게 한마디를 건넸다.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에서, 네 작업은 올해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있었어. 넌
용감한 시도를 한 거야. 축하한다.”
이안이 아니었다면 분명 나는 석사과정을 마치지 못했을 텐데, 숙소 문제로 급히 독
일로 이동하느라 그만큼의 감사를 다 표현하지도 못하고 영국을 떠났다. 언젠가 내가
조금 더 자리를 잡게 되면, 그때 멋지게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띄우리라, 그런 미련
한 핑계로 위안을 삼고 있었던 것 같다. 일년도 채 되지 않아 먼 곳에서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때 느꼈던 것은, 후회를 넘어선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나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념일이나 생일 따위
의 숫자와는 상관없이 할 말을 하고 주고 싶은 것들을 주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선물, 감사. 그런 것은 묵히지 않고 지금 주겠다.
내 눈 앞에 당신이 있을 때.
바로 지금.
그리고 다시금 감사를 건네고 싶다. 작업적인 고민을 던져주었던, 그리고 그것을 해
체시키도록 도와주었던 로빈과 이안 두 분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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