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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s Note/미완의 에세이 Essays

로마 카타콤의 닻

런더너의 막간 이태리 여행 │  로마 카타콤의 닻

 

41도의 뙤약볕 아래, 수많은 인파들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였다. 교황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다. 그늘 하나 없는 광활한 광장에서 저마다 타는 목마름으로 우산이나 지도에 매달려 교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30분가량 기다리자니 정수리와 어깨가 빨갛게 익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흘깃, 돌리자 같은 말을 담은 친구의 눈이 마주쳤다. 한 번쯤 교황의 모습을 보고는 싶었지만 봐야 할 수많은 곳들이 남아있기에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판테온의 돔 천장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빛

 

서늘한 판테온(Pantheon)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제야 더위에 나간 넋이 돌아오는 듯했다. 판테온은 로마에 현존하는 돔 구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재건된 시점으로만 따져도 서기 125년이라 하니 현재의 모습으로 보존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라 불릴 만하다. 로마 제국의 제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us) 재위 시절에 재건된 판테온은 세월이 흐르며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되기도, 또는 예술가와 왕족의 무덤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아테네 학당’으로 유명한 화가 라파엘로 또한 이곳에 잠들어 있다. 

 

수세기의 이야기가 깃들 수밖에 없는 건축이란 형태의 예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로마. 한편으로는 과거에 묻혀 현재를 쌓아 올리기 힘든 현대의 건축가들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도시 전체가 개발 제한에 묶여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기는 어렵다고 하니 말이다.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 입구. 들어서면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오솔길이 나온다.

 

로마 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바티칸도, 콜로세움도 아닌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Catacombe di San Callisto)였다. 순례자들이 많이 찾아오기에 한국어 해설도 준비되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이탈리아 신부님께서 인솔자로 동행하셨는데, 목에 건 오디오 가이드를 능숙히 조작하며 움직이는 구간마다 한국어 해설을 틀어주셨다. 

 

좁고 어두운 돌계단을 하염없이 내려가는 동안, 벽면 곳곳에 새겨진 간절함의 흔적들을 눈으로 좇았다. 뭇사람들에게 익숙한 물고기 문양, 익투스 외에도 불멸을 상징하는 수탉,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등 다양한 문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날 본 수많은 명화들을 뒤로하고 오롯이 내 마음을 차지한 것은 바로 우둘투둘한 거친 선으로 그려진 닻이었다. 300년 박해의 시대를 온몸으로 담아낸 닻. ‘영원한 항구에 정박하다’라는 뜻대로 그들은 어딘가에서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을까. 

 

후에 런던에 돌아가 이 여행의 소회를 피렌체의 다채로운 색, 베니스의 반짝이는 청록, 그리고 로마 카타콤의 닻을 담아 기록해 두었는데, 이 역시 콜렉터 요한의 소장품이 되어 그 다음 해 런던의 한 단체 전시에 선보일 수 있었다.  

 

 

희망의 닻, 캔버스에 아크릴, 91.4×61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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