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oy's Workspace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6. 5월의 가을이란 5월의 가을이란 소생한 만물들이 그 싱그러움의 절정을 찍어야 할 5월에 모든 것이 스러져 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여름 햇살이 폭포수처럼 내리는 12월도 담담히 보냈고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닌데, 없던 것을 얻은 것과 있던 것을 잃은 것은 그 생경함의 정도가 놀라우리만치 달랐다. 기온은 봄과 그리 다를 것도 없었지만 마음 속 온도계는 늘 0을 가리켰다. 그 때문인지 체감온도가 급격히 낮아져 평소 같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그런 바람에도 쉬이 옷깃을 여미게 되었다. 때가 되어 찾아온 가을인데도, 나는 요절한 친구를 보내는 것만치 5월의 이름이 안쓰러웠다. 눈도 찾아오지 않는 텅 빈 겨울이 오기 전에 거리 전시는 이만 접어야겠다고, 청소차에 빨려 들어가는 낙엽들을 보며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 더보기
첫 출항-호주의 워홀러로 #5. 첫 갤러리 계약 첫 갤러리 계약 기회는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오는데 어떤 것은 그대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고 그 기회를 잡았었더라도 그것을 손에 쥐었던 그때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면, 함께한 기념사진조차 남겨두지 않았을 정도로 그 기회를 홀대했다면, 그건 그야말로 스쳐간 인연에 불과한 것이다. 전면 유리로 된 외벽 안쪽에 분명 내 그림들이 고운 액자에 안겨 전시되어있었고, 나는 그 앞을 수도 없이 지나다녔다. 그 길을 종종 다니는 친구들은 늘 어제 네 그림을 보았노라며 재잘댔고, 그 앞을 지나던 어떤 이들은 그 그림을 좋은 값에 들여가기도 했다. 집에서 대각선으로 20미터도 채 떨어져있지 않던 그 작은 갤러리. 작가 인생 처음으로 계약을 성사시킨 역사적인 곳이었음.. 더보기
어 돌러 머쉬룸!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4어 돌러 머쉬룸! 내가 외국인 노동자 겸 자취생으로 살면서 생활비를 크게 아낄 수 있었던 건 재래 시장을 애용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었던 퀸 빅토리아 마켓은 나 같은 참새로서는 지나치기 힘든 방앗간이었다. 이곳엔 야채와 과일을 비롯한 농산물 이외에도 싱싱한 꽃과 각종 관광 기념품, 오팔 장신구, 옷, 정품 어그부츠까지 없는 것이 없는데 그 값은 대형마트나 상점보다 훨씬 저렴하다. 운이 좋으면 파격적인 흥정도 가능하며, 휴일인 월요일과 수요일의 전날, 그러니까 일요일, 화요일 마감시간을 공략하면 푼돈으로 질 좋은 식재료를 대량으로 구비할 수 있다. 실외에 위치한 농산품 코너는 그 구조상 변변한 식품보관시설이 없어 상인들 모두 경쟁적으로 판매에 임한다.. 더보기
도심 속 공생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3도심 속 공생 -갈매기 형님들 멜번 땅을 밟은 지 한 달이 채 못되었을 무렵, 처음으로 잉크를 꺼내 슥슥 그려낸 것은 이곳의 첫인상에 관한 나의 총평이었다. 바다를 옆에 끼고 살아본 적이 없는 내게 갈매기는 바다에서 날아온 쪽지와도 같은 반가운 존재였다. 말끔하게 빠진 순백의 몸체 위에 늦봄의 햇살이 반지르르 흘러내리는 그 모습을 도심 속에서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주립도서관 앞 푸른 잔디 위에는 물 반 고기 반이 아닌, 사람 반 갈매기 반의 풍경이 맑은 날이면 어김없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멀리 있어 반갑던 이 녀석들은 함께 살면 살수록 그 실체를 드러내었고,나중에는 아련하기는커녕 그저 비둘기보다 크고 먹성 좋은 비둘기 8촌쯤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길바닥에 누군가 감.. 더보기
버스커로 살기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2버스커로 살기 - 나의 첫 소장자 뙤약볕 아래, 여느 날처럼 자리를 펴놓고 잉크 드로잉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고개를 드니 엄청난 속도로 이쪽으로 걸어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묵직한 컴퓨터 부품 박스를 양손에 움켜쥐고 고개는 꼿꼿이 정면을 향한 것이 누가 보아도 바삐 지나갈 사람이었다. 스쳐 지나는 찰나, 남자는 갑자기 두 세 걸음을 되돌아 오더니만 맨 앞쪽에 놓인 작은 드로잉을 사고 싶다고 했다. 원칙적으로 버스커는 도네이션은 받을 수 있어도 가진 것을 판매하지는 못하게 되어있다. 매우 형식적인 원칙이라 경찰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긴 하지만, 별로 팔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무슨 말은 해야 했다. “나는 그림 값을 정해본 적이 없는데…….. 더보기
나의 도시 멜번 첫 출항 - 호주의 워홀러로 #1나의 도시, 멜번 서울 태생인 내가 난생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가 된 곳, 멜번. 원체 서울이 고향답지 못한 대도시이다 보니 이 장난감 같은 도시는 금세 내게 제2의 고향이 되어주었다. 준비단계에서 다른 많은 도시들을 제쳐두고 멜번을 선택했던 이유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 기록되었던 그 알량한 정보뭉치들은 이 땅을 밟음과 동시에 인식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강렬한 햇빛으로 선명하게 살아난 색들이 하늘과 건물들, 거리와 사람들을 휘감으며 일렁였다. 호주에 가니 입을 옷이 그렇게도 없더란 푸념 일색이던 사람들에게 돌연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을 만큼, 내 취향에는 꼭 맞는 오색찬란한 옷들 천지였다. 대체 무슨 연고로 추가요금까지 내고 꾸역꾸역 옷가지들을 쑤셔왔던가! 빌딩.. 더보기
휴학, 그것으로 안녕 서울 #1. 항로선회 휴학, 그것으로 안녕 2006년 겨울, 3학년을 마치고 공황상태가 찾아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 믿고 해오던 많은 것들이 실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눈치채버렸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는 3년을 보내놓고도 내가 시각디자인이라는 광범위한 울타리 안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전공영역 중에서는 영상 파트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었지만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까지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한계선이었다. 글은 늘 쓰던 것이고 할 말도 많지만 그것들을 표현할 방법, 즉 매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도 애매했고 그렇다고 그대로 계속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뾰족한 답도 대안도 나오지 않던 상황 속에서 나는 내가 속한 모든 .. 더보기
미완의 에세이. 6/14 2013년 여름, 대학 동기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런던에 가고 싶다고. 그곳은 어땠느냐고. 퇴근길에 책상 한편에 두었던 에세이 초고를 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당시에 쓰고 있던 부분이라 런던 챕터만 따로 프린트해 둔 것이었다. '런던에 속았다'는 챕터 소제목 그대로, 나는 런던행을 그리 추천하는 입장은 아니다. 나와의 공통분모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 하루 저녁을 소모한 이런저런 경험담과, 머리 셋을 모아 이리저리 짜낸 현실적 대안들이 도움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녀는 결국 런던행을 택하지 않았고, 현재 국내에서 만족할 만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대학 동기라 해봤자 서로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관계가 되어버리기 십상이지만 이만큼 성숙해진 (혹은 능글맞아진) 모습들로 유쾌한 저녁을.. 더보기
Your Song(cover) 독일에서의 어느 무료했던 가을 날.독일 넘어가기 전에 석사 동기인 포르투갈 친구가 이 노래를 꼭 불러달라며 추천해줬던 게 생각이 나서 연습을 했더랬다.기타를 워낙 못쳐서 애먹었지만 가사가 좋아서 계속 부르고 싶어졌던. 사진은 독일에서 쓰던 싸구려 기타인데, 여태껏 저렇게 예쁜 색은 본 적이 없다. 들고 올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쉬웠다. Youtube Link - Kate Walsh 의 Your song (covered by Joy) 더보기
난 사라지지 않으려_Not to disappear, 2013 난 사라지지 않으려_Not to disappear, Acrylic and ink on paper, 57.5×38cm, 2013 개인전이 끝난 후 삼개월 만에 처음으로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한곡 때문에. 음악을 들으며 작업한 것은 지난 레지던시 때 독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갑자기 잡혔던 세미나 내용을 만드느라 어쩔 수 없이 했던 적 밖에는 없다. 생각지도 못한 터닝포인트로 다가왔다. 이곡이 내게는. 흔적- '난 사라지지 않으려' 난 사라지지 않으려 오늘도 또 애쓰고 견디며 한발짝 걸치고 서있네난 아무것도 모른 채 곁에만 서성이다 이제야 진실이 무언지 알았네 저 화려한 불빛은 숨이 막혀 하염없이 그렇게 나난 조용한 하늘에 안심하며 살아가네 살아가네 (어딘지도 모르고 어딜 향하는지도 몰라 옳은지.. 더보기
2nd Solo Show 시공간의 기록. 2013. 5. 21~27 조아영 개인전 시공간의 기록 전시장 전경. The overview of the show I had last time. 더보기
매일, 마주하는 것들. 매일, 마주하는 것들. 꼭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매일 그 자리에 있어줌으로써 어떤 일정한 무게로 나를, 또 나의 일상을 유지시키고 있는 그런 것들.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매일 보는 이 어딘지도 모르는 바다와, 오후면 머리 언저리를 지긋이 누르는, 이제는 당연하고 가벼울 뿐인 무언의 중압감. 정서향인 탓에 6시 즈음이면 블라인드 사이로 정확히 눈을 맞추는, 아주 동그란 석양. 멀뚱히 서있는 탁상달력과 어지럽게 꽂힌 두 프로젝트의 각기 다른 서류들. "아, 나는 정말 회사 체질이 아니야. 도저히 그렇게는 못 살아." "회사 체질인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3년 여 전 홍대의 어느 카페에서 친구에게 무심코 던졌던 내 말이 얼마나 우스운 말이었는지, 주말에도 같은 시각에 눈을 뜨는 내 몸뚱이.. 더보기
2008년곡 작은 천국의 무희 시간이 이렇게 지나서야 녹음을 한다.(역시나 새벽이라 상태는...) 졸업전시 마지막 날이 마침 정기공연일이라 전시작품과 동명의 곡을 불렀었다. 친구가 찍어준 공연영상이 하나 남아있어 망정이지 가사도 다 잊어버릴 뻔했다. 2008년이 너무 멀다 이제. 피어나라 피어나라 꽃들아 피어나라 피어나라 꽃들아 피어나라 피어나라 꽃들아 일어나 나와 함께 춤을 춰야지 바람의 악보를 읽어 주겠니 딴딴따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 딴딴따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사람아 일어나라 일어나라 사람아 일어나라 일어나라 사람아 눈을 뜨고 네 안을 바라 보아라 맘을 열어 영혼의 노래를 하자 딴딴따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 딴딴따라라라라 라라라라라-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 작은 천국을 감싸온다 태양에서 세 번째 떨어진 아름다운 꽃.. 더보기
항해자의 노래 (사랑해 지금을) 당신의 맘이 열리고 나의 마음이 울리고 말간 태양이 오르고 우리의 날은 푸르고 내가 어느 곳에 있을 지 알 수 있겠냐마는 내가 어디까지 닿을 지 가늠하겠냐마는 사랑해 지금을 오늘도 오늘을 살아낸 나를 사랑해 지금을 오늘도 내일을 살아갈 너와 나 내가 어느 곳에 있을 지 알 수 있겠냐마는 내가 어디까지 닿을 지 가늠하겠냐마는 사랑해 내일을 밝아올 아침을 또 하룰 살아갈 우리를 6/23 am6:00 뒷부분을 더 붙여야 하는데 지금은 일단 자야겠다. 더보기
Violet Sunshine. 첫 녹음. 대학 때 미술대학 내에서 밴드를 했었다. 그때는 세션들이 알아서 연주를 해주었기에 아주 편하게 노래할 수 있었지만 졸업 후 가끔씩 노래할 일이 생길 때마다, 가곡도 아닌 노래들을 목으로만 채우기가 여간 허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교 때 사놓고 방치해두었던 기타를 조금씩 치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매우, 못친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만든 곡을 부르는데도 기타는 다른 사람이 쳐달라는 주문을 받은 적이 있다. (금현이네 사장님이었지 아마...) 옆에 앉았던 기타치는 선배는 영문도 모르고 대강 써놓은 코드로 급 연주를 해주었었고...지금 생각하면 매우 굴욕적이다. ㅎㅎ 멜로디에 기타 코드만 어찌어찌 적어놓은 종이 쪼가리들을 어떻게 할까 늘 생각만하다가, 올해 들어 큰 맘 먹고 미디를 만져보기로 했다. 녹.. 더보기